1. 학술조사
- 문화재 지표조사
1975년 6월부터 대청댐 수몰지역조사(75~76년)을 시작으로 충주댐(78~80년) 중원문화권(80~84년) 중부고속도로(85~86년), 오창 과학산업단지(94년), 청주 개신지구(96~97년) 등의 문화유적 지표조사를 실시함.
- 문화재 발굴조사
청원 두루봉동굴 구석기유적(76~83년), 청주 신봉
출토되었다.
➅ 덕천동 고분군
낙동강 하류의 동안(東岸), 부산 동래구와 북구를 경계하는 금정산의 서쪽 기슭에 있는데, 강과는 불과 500m 정도 떨어져 있다. 발굴조사 당시 이미 유적지의 일부가 잘려 나갔으며, 남은 부분도 조사 결과 장기간에 걸쳐 도굴되어 원형을 간직한 유구가 거의 없는
. 출토된 토기는 융기문토기가 주류를 이루었다. 석기는 결합식어구·석부·석촉(石钃)·석창(石槍)과 정해진 모양이 없는 박편, 그리고 석핵이 출토되었다. 멧돼지뼈·사슴뼈와 독수리 날개뼈를 가공한 작살·미늘 등이 발견되었다. 이 외에 사람·물개를 나타낸 토우(土偶)와 도토리도 발굴되었다.
출토된 갖가지
미술공예품이 전시되어 있다. 신라 공예미술의 축소판 이라 할 수 있는 사리장엄구와, 불교의 화장(火葬)의 영향으로 통일신라시대부터 나타나기 시작하는 뼈 항아리 류[骨壺]들은 고대인의 죽음과 관련된 대표적인 유물들이다. 1976년부터 1983년까지 8년간에 걸친 황룡사터 발굴조사를
유물은 유적이나 유구에서 출토되는 토기류, 무구류, 장신구류, 회화류 등을 말한다. 매장문화재는 오랜 시간 동안 변화하는 환경 속에 묻혀 있었기 때문에 그 성격을 규명하는 과정에는 고고학 전문가에 의한 체계적인 조사가 반드시 필요하며 개발사업과 가장 밀접하게 관련이 있는 문화재로 볼 수
, 돌도끼, 화살촉, 돌톱, 인면상, 돌칼, 돌창, 추모양석기, 숫돌, 돌감, 치레거리, 도토리 등 많은 유물들이 발견되었을 뿐만 아니라,
신석기시대 사람들의 집터와 소할석 유구 등 많은 유적들도 발견되었다.
이중 몇 가지 유물과 유적을 설명하자면, 먼저 하층부에서 발견된 흑요석제는 조사결과
문화유산'은 포함시키지 않고 유형의 물질위주로 설정되어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보물, 고적, 명승, 천연기념물 혹은 유적, 유물이란 용어를 일제 강점기 이래로 사용하여 오다가 1961년 10월 2일 각령 제 181호에 의거한 문화재관리국 직제공포로 문화재란 용어를 처음 공식적으로 사용하였고, 1962년 1
독무덤은 14호 집터의 어깨선 안쪽에서 2기가 확인되었는데 삼각형 모음 무늬를 가진 토기 안에서 사람 뼈가 출토되었다. 또 후포리 유적에서 조사된 두벌 묻기 한 집단무덤은 다른 지방에서도 존재하였을 가능성이 매우 높고, 화장 또한 행하여졌을 가능성이 연대도나 산등유적에서 확인된다.
문화의 보급의 확대와 생산력의 증대에 따라 마한 연맹체내에서도 일정지역의 소국들이 경제적 교환이나 적대적인 세력에 대한 공동방어 등의 목적 하에서 보다 강한 결속력을 형성하게 되었다.
마한연맹체 내에서 형성된 지역연맹체가 어느정도였는지는 분명히 하기 어려우나 위례의 백제국 세
유물, 완도해저인양유물 등 원나라 도자기들이 이곳 박물관에 전시되고 있다.
총 유물의 개수는 48,469점으로 다양한 유물들이 전시되어있으며, 이중에 국보가 3점, 보물이 1점 전시되어있다. 상설전시관, 현암관(학예연구실), 어린이박물관, 누리관, 대강당등 많은 유물들과 우리의 문화나 풍습등을 알